화요일, 5월 29, 2007

컴퓨터 vs 책: [일상다반사] 핵심 엔지니어 국가가 관리해야?

컴퓨터 vs 책: [일상다반사] 핵심 엔지니어 국가가 관리해야?


이 사람말을 종합해 보면 '일 잘하는 놈은 노비화 하자' 이다. 이 말 듣고 일 잘할 놈은 없으므로 다른 말로 바꾸면 '이공계에는 발을 들여놓지 말자'이고, 더 나아가서 행여나 이공계에 발을 들여놓더라도 '핵심기술은 건드리지도 마라'이다.

왜 이 사람이 이다지도 핵심엔지니어를 미워할까? 핵심엔지니어가 기술을 빼돌렸기 때문에? 만약 이런 이유라면 모든 핵심 엔지니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고 매우 위험한 사상이다.

아마도 이 사람의 근본적인 생각은 jrogue 생각대로 엔지니어 머릿속의 지식을 국유화 하자 일 것이다. 문제는 지금 이 시대에는 그게 불가능 하다는 사실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공계 몰락을 위한 지능형 테러리스트일지 모른다.

이 사람이 쓴 다른 논설도 참조해 보면 그 우려가 확신으로 바뀐다.

그러니 이 사람의 논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하는 것 보다 저런 사람이 논설위원으로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개탄을 할 때이다.

대전의 교통

길에 차선을 긋고 신호등을 설치하는 것은 어찌보면 단순해 보이면서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만약 차선과 신호등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대전은 대중교통이 그다지 활성화 돼 있지 않다. (어디까지나 서울과 비교해서)
대전에는 지하철이 있지만 손님은 별로 없이 텅텅비어서 간다. 출퇴근 러시아워때 지하철에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물론 자동차가 다니는 길은 넓게 뚫려있다. 처음엔 나도 대전은 도로가 너무 잘 돼 있어서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아닌 듯하다.

오늘 이야기는 대전의 짜증나는 도로다. 세 가지 케이스를 들어보기로 하자.

1. 짜증나는 신호등 체계

'교통 량에 따라 가변적' 아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대덕대교 근처 신호등 두어 개. 이 신호체계는 교통의 흐름을 끊기위해 설계된 듯 하다. 먼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다리 건너기 전 신호등의 좌회전을 보자. 직진 후 직좌 신호가 들어오는 이 신호등의 반대편 차선은 직좌 후 직진 신호가 켜진다. 이 신호만 봤을 때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앞쪽의 신호와의 연계를 생각하면 빵점이 된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을 때는 차가 한대도 안지나간다. 그러다 앞쪽에서 차가 몰려오기 시작하면 약올리듯 좌회전 신호를 켜버린다. 신호받고 직진할 수 있었던 차량은 오직 초기에 과속해서 지나가는 몇 대의 차량들 외엔 없다. 이거 한 두번 당하면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계속 당하면 약이오른다. 몇 몇 사람들은 그 짜증나는 신호 때문에 그쪽길로 가지 않는 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이런 신호등 체계가 몇 군데 있다. 예를 들어 50~100m간격으로 3단 신호등 체계가 있는 엑스포 아파트 앞길. 여기선 절대로 두 개 이상의 신호등에 걸려야지만 통과가 가능하도록 설계 돼 있다.

2. 이해가 안가는 버스전용차로

전에는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버스전용차로라고 퍼런색 선을 그려놨다. 그런데 이걸 그린 사람은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두고 온듯 하다. 틀림없이 버스 전용차로가 아닌 선에서 조금 가다보면 어느새 버스 전용차로에 들어서 있다. 도대체가 교통의 흐름은 생각지도 않은 전용차로 선이다. 버스 전용차로 보다 하위차선도 있다. 그건 버스전용차로가 아니라 일반적인 '우회전'차선이다. 도대체 버스 전용차로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선만 보고는 감이 안잡힌다.

나는 아예 무시하기로 마음 먹었다.

3. 정신 차리지 않으면 샛길로 빠지는 차선

대전 KT연수원에서 대덕대교에 이르는 넓은 대로. 이 길을 똑바로 가고자 한다면 특정지점에서 반드시 왼쪽차선으로 하나씩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우회전 차선에 들어가 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도대체가 똑바로 가기 위해서 계속 왼쪽 차선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발상이 참 재미있다. 혹시나 초보자가 1차선에서 차선도 못바꾸고 거북이 운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면(절대적으로 그렇게 보인다.) 좀 오버가 심했다.

특정 지점이 아니라 항상 왼쪽차선으로 들어서려 하다간 좌회전 차선으로 빠질 수 있으므로 그것도 조심해야 한다.


어쨌든 간에, 도로는 넓고 차도 서울보단 적다. 다만, 내가 목격한 사고 현장은 서울서 출퇴근한 10년 동안보다 여기서 6개월간 본게 더 많다. 더 정확히 말하면 최근 한달간 ...


조심은 내가 해야지 원....

월요일, 5월 28, 2007

인간의 욕심

요즘 들어 좀 규모가 큰 사업에 참가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규모가 커 봤자 수십억 단위였고 끽해야 백억 단위였지만 이런 단위가 커지고 나니 이제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인간의 '욕심'과 관계된 더러운 꼴이다. 솔직히 수십억 단위의 일을 깨끗하게 처리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하지만 백억 단위를 넘어서서 수백억 수 천억 단위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말인즉슨, 작은 단위에서는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 제품을 납품하고자 할 때, 이 제품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거나 별 차이가 없을 수 있고 절대로 집어넣어서는 안될 수도 있다. 이러한 판단은 매우 간단하다. 하지만, 이 단위가 달라질 때에는 판단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워진다.

이럴때일수록 당연히 청렴결백한 사람이 있어줘야 하는데, 그건 그다지 바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단순히 청렴결백한 것만 가지곤 사기치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 가진 결정권자가 멍청할 경우라면 이건 약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돈 가진 결정권자가 반드시 멍청하리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 난 단순히 돈을 갖다 버릴 정도로 멍청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답답한 이유는 바로 멍청한지 아닌지 내가 알 길이 없다는데 있다.

어쨌거나, 이번 사업은 (잘되건 못되건 간에) 나에겐 또하나의 '좋은경험' 이 될 것이다.